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화 검열제 (문단 편집) === 왜 한국에서 성공했는가? === 하지만 저 두 나라는 그럼에도 만화산업이 끝까지 버텨서 다시한번 황금기를 이루어 냈다는 차이점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렇게 미국/일본과 한국의 운명이 갈린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민주주의 체제에 표현의 자유를 더 중시했던 미국과 일본은 '''순수한 민간 시민단체에 의해''' 규제와 검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화가와 만화 독자층들의 항의를 쉽게 받아줄 수 있었고 1960년대 [[히피]]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으로 사회가 급변한 영향을 받은 반면 '''군사독재정권'''이었던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만화가가 항의하면 당사자나 주변에 압력을 넣거나 데모를 해도 '''경찰력으로 찍어누르면 장땡'''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검열, 규제에 항의할 힘이 없었다. 만화가들의 정점 그 자체인 한국만화가협회가 정부의 통제 하에 친목단체로 전락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국가가 직접 검열과 규제에 나섰으므로 '''항의나 풍자는 원천적으로 막혀있었다.''' 게다가 언론 역시 정부의 보도통제와 언론 자신의 외면으로 인해 만화 검열에 대한 비판이나 만화가들의 고난을 실을 수도 없었다. 이런 연유로 유명 만화가들과 만화방 주인들 역시 매년 어린이날마다 불량만화 추방운동에 동참하는 등으로 이에 순응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 당시 대한민국은 '''저개발국'''으로 경제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론 유교 문화의 잔재가 짙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당시 1인당 소득이 67~100달러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문화적 여유를 즐길수없는 [[매슬로우 욕구|결핍욕구]] 국가에 가까운 상태였고, 즉 경제적인 요인, 정치적인 요인, 문화적인 요인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대한민국의 만화 검열제(를 비롯한 대다수의 미디어 검열) 정책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한국의 문화는 만화만 탄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등 모든 영역에서 검열과 규제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이 시기에 작살난 문화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천상병, 김지하, 백두산 등] 즉, 다른 국가들의 경우 이미 만화 산업이 크게 발달한 후인지라 짓밟혀도 버티고 있을 기반이 존재해서 근근히 버텨오다가 다시 해제되자 미리 닦아둔 기반을 시작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만, 한국은 만화 산업이 완전 붕괴했다가 간신히 머리를 살짝 들었는데 도로 짓밟히면서 일어설 기반 자체가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